Hong Kong Asia's World City

역사

중국의 남동부 해안, 주강 삼각주와 남중국해에 자리한 홍콩의 전략적인 위치는 홍콩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국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홍콩의 모습은 중국 청나라 왕조가 1842년 최초의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고 청나라가 영국에 홍콩섬을 이양하면서 탄생했다. 그 후 60년 이내에 구룡, 신계지, 235개의 외곽섬들 또한 영국에 임대됐다. 홍콩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1,100평방미터가 넘는 땅의 역사는 1000년을 이어온 청나라 왕조에 의해 시작됐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로 인해 여행자들은 도시의 화려한 문화 유산을 탐험하고, 강력한 가문, 약탈을 일삼던 해적, 유럽 상인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영국 식민지 초기부터 홍콩은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격동의 20세기 초반, 홍콩의 인구가 크게 늘어났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넘어 온 난민들이었다.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은 홍콩이 주요 제조 산업의 허브로써 새로운 역할을 시작하게끔 했으며, 경제적으로 고무된 에너지와 산업은 도시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다. 최근 수십 년간 중국 본토의 경제가 개방되는 과정에서, 홍콩은 세계 최대 규모 시장의 중요한 관문으로써 서비스 기반의 경제가 보다 발달하는 등 다시 한 번 변화했다.

'하나의 국가, 두 체제' 윈칙에 따라 홍콩은 1997년 7월1일 중화 인민 공화국의 특별 행정구가 됐다. 이 협정은 홍콩에 자본주의 체재의 유지, 독립적인 사법부와 법률 보유, 자유 무역과 언론의 자유 등을 허용하며 높은 자율성을 지키도록 했다.

홍콩의 역사를 살펴보면 끊임 없이 변화가 거듭된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정신만은 변하지 않았다. 잠자는 어촌 마을을 세계 무역의 교차로로 변화시켰던 당시와 동일한 에너지 및 역동성이 21세기의 홍콩이 아시아의 세계 도시로써 확고히 자리잡도록 해준다. 도시의 풍부한 문화와 유산을 직접 탐험하며 홍콩 이야기와 홍콩 정신을 경험해보자.

연대표
700 BC 고기잡이를 하던 원주민들이 유동적인 사회를 형성했다.
50 BC 중국이 전체 지역을 흡수했다.
AD 960 –  1500s 가문이 지역에 정착하고 산적과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 담장을 쌓았다.
1514 포르투갈 상인이 투엔문에 기반을 구축했다.
Early 1800s 영국 상인들은 중국 실크, 은, 향신료, 차를 얻기 위하여 아편을 무역했다.
1840 – 42 중국의 아편 전쟁 결과 홍콩섬은 영국에 영구적으로 할양됐으며, 홍콩의 크라운 식민지가 설립됐다.
1860 구룡 반도와 스톤커터섬이 영국에 이양됐다.
1898 신계지가 영국에 99년간 임대됐다; 식민지 홍콩은 중요한 무역항이 됐다.
1910 중국의 국경과 홍콩을 연결하는 구룡-캔톤 철도가 완공됐다.
1911 –1949 중국의 정치적인 격변과 전투로부터 도망친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홍콩의 인구가 늘어났다.
1941 – 45 2차세계대전 기간에 일본이 홍콩을 차지했다.
1950 – 1970s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섬유와 조명 제조 산업에서 호황을 만들어 냈다; '메이드 인 홍콩' 제품이 전 세계로 수출됐다.
1980s 홍콩은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됐고, 세계 상위 10개 경제 대국에 합류했다.
1984 중국과 영국은 홍콩의 반환을 약속하는 중국 - 영국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1997 (July 1) 홍콩은 중화 인민 공화국의 특별 행정구가 됐다.
1998 첵랍콕에 홍콩 국제 공항이 문을 열었고, 이듬해 공항건설산업제조협회(CIMA)로부터 20세기 건축 성과 Top 10에 이름을 올렸다.
2008 홍콩은 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공동 개최했으며, 홍콩에서는 승마 경기가 진행됐다.
2011 청차우 빵 축제, 타이오 드래곤 보트 워터 퍼레이드, 타이항 파이어 드래곤 댄스, 홍콩 차오저우(Chiu Chow) 공동체의 위란제까지 4가지 홍콩의 주요 축제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중국 제3의 국가 무형문화유산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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